추수경장군묘역
- 🕒이용시간 상시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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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경 장군은 명나라 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청하, 호는 세심당이다. 명나라 귀주성 성덕산하 오현군 칠성동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나고 문무를 겸비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명나라의 무강자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의 신종에게 청원하여 이여송의 원군을 출병케 하였고, 자신도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총병아장으로 다섯 아들과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함께 참전하였다. 1593년 2월 곽산 대첩을 시작으로 평양성 탈환, 개성ㆍ한양 수복 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고, 전주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전주사고를 끝까지 지켰다. 명나라 군사들의 환국 시 조상의 나라에 남기로 하고 전투에 참여한 5명의 아들과 함께 완주군 봉동읍 추동에 남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추동이라는 마을 이름도 추수경 장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죽은 뒤에 충장공의 시호를 내리고 호성공신·완산부원군으로 봉하였다. 무덤 앞에 있는 비는 1973년에 새로 세운 것인데, 원래의 비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제각으로 썼던 [봉양제]라는 건물은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터에 주춧돌과 정문만이 남아 있다. 훼손된 묘역은 2004년 11월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완주군에서 신도비와 사당 봉양사를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고, 전주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전주사고를 끝까지 지켰다. 명나라 군사들의 환국 시 조상의 나라에 남기로 하고 전투에 참여한 5명의 아들과 함께 완주군 봉동읍 추동에 남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추동이라는 마을 이름도 추수경 장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죽은 뒤에 충장공의 시호를 내리고 호성공신·완산부원군으로 봉하였다. 무덤 앞에 있는 비는 1973년에 새로 세운 것인데, 원래의 비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제각으로 썼던 [봉양제]라는 건물은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터에 주춧돌과 정문만이 남아 있다. 훼손된 묘역은 2004년 11월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완주군에서 신도비와 사당 봉양사를 세웠다.
야생의 포켓몬 발견!
이곳에 엑스레그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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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후기
- <전북 완주>추수경 장군 묘역 저희 가족은 얼마전 전주에서 가까운 완주군 봉동면 은하리 소재의 추수경 장군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저희 가족은 황태구이 정식을 시켰는데 탕맛과 구이맛이 잘 어우러져 만족할만한
- 추수경장군묘역 전북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103외
- 지금 당신은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세인 추수경장군 묘역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습니다이곳에서 오른쪽 산허리길 쪽 으로직진은 학림사 현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중간중간 전망도 좋은 산 같다추위 도가 찍힘니다학림사 현판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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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동 시앙(생강) 아래 추수경 장군 묘역 봉동의 원래이름은 봉상이었는데 봉상면과... 직접 50년 된 도성진 선생님 댁 생강굴에 가 보았는데요. 참 재미있는... 살만한 동네’, ‘로컬 푸드의 글로
후기 · 네이버 블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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